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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뉴개발팀은 야근 안 해도 됩니다.”
이 말만 들으면 꽤 좋은 회사처럼 들릴 수 있습니다. 정해진 시간 안에 일을 마치고 퇴근할 수 있는 팀, 불필요한 야근을 하지 않는 직장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제가 말하고 싶은 뜻은 조금 다릅니다.
메뉴개발은 야근을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이 아니라, 야근을 한다고 해서 반드시 해결되는 일이 아니라는 뜻에 가깝습니다.
일반적인 사무 업무는 시간이 부족할 때 조금 더 집중하거나 근무 시간을 늘리면 일정 부분 진도를 낼 수 있습니다. 작성해야 할 문서가 남았다면 몇 시간 더 작업할 수 있고, 정리할 자료가 많다면 늦게까지 앉아서 마무리할 수도 있습니다.
물론 모든 회사 업무가 시간만 투자한다고 해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메뉴개발은 특히 더 분명한 한계가 있습니다.
메뉴를 개발하려면 결국 사람이 직접 먹어보고 맛을 판단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메뉴개발은 오래 앉아 있다고 끝나는 일이 아닙니다
메뉴 하나를 개발할 때는 한 번 조리하고 한 번 맛보는 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첫 번째 시제품을 만든 뒤 간을 확인하고, 소스 농도를 바꾸고, 재료 비율을 조정합니다. 고기의 양을 줄여보기도 하고, 채소의 식감을 다르게 살려보기도 합니다. 같은 메뉴라도 조리 시간과 불의 세기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기 때문에 여러 조건을 바꿔가며 반복해서 테스트합니다.
한 번 맛볼 때는 몇 숟갈 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메뉴가 여러 개이고, 각 메뉴를 몇 차례씩 수정하다 보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오전부터 계속 시식하다 보면 점심시간이 오기 전에 이미 배가 부릅니다. 그런데 개발 일정은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윗사람은 오늘 안에 결과를 보고 싶어 하고, 매장에서는 신메뉴 출시 일정을 기다리고 있으며, 개발자는 아직 맛을 확정하지 못한 상태일 수 있습니다.
이럴 때 “조금 더 늦게까지 하면 되지 않느냐”는 말을 듣기도 합니다.
하지만 배가 꽉 찬 상태에서 계속 맛을 보는 것은 생각보다 어렵습니다.
배가 부르면 맛을 판단하는 감각도 달라집니다
메뉴개발에서 중요한 것은 많이 먹는 일이 아닙니다. 정확하게 판단하는 일입니다.
짠맛이 조금 강한지, 단맛이 끝에 남는지, 향신료가 다른 재료의 맛을 가리는지 확인해야 합니다. 첫입의 인상뿐만 아니라 여러 번 먹었을 때 질리지 않는지도 생각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미 여러 메뉴를 시식해 포만감이 커지면 음식에 대한 반응이 달라집니다.
배가 고플 때는 맛있게 느껴졌던 음식도 배가 부르면 부담스럽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반대로 자극적인 맛은 배가 부른 상태에서도 강하게 느껴지기 때문에 실제 고객이 경험할 맛과 다르게 판단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입안에 이전 메뉴의 향과 양념이 남아 있으면 다음 메뉴의 맛을 객관적으로 구분하기도 어렵습니다. 물을 마시거나 입을 헹구고 잠시 쉬어도 하루 종일 반복된 시식의 피로가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이 상태에서 억지로 테스트를 이어가면 일을 많이 한 것처럼 보일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결과가 더 좋아진다고 장담하기는 어렵습니다.
오히려 맛의 기준이 흔들리고, 다음 날 다시 테스트해야 하는 상황이 생길 수 있습니다.
빨리 만들라는 압박이 가장 힘들었습니다
메뉴개발을 하면서 가장 큰 스트레스는 단순히 일이 많다는 사실이 아니었습니다.
정해진 시간 안에 원하는 맛을 완성해야 한다는 압박이 더 힘들었습니다.
윗사람이 원하는 맛은 머릿속에 있을 수 있습니다. “조금 더 대중적으로”, “첫입에 강하게”, “경쟁사보다 특별하게”, “원가는 낮지만 고급스럽게” 같은 요구가 내려옵니다.
문제는 이런 표현이 정확한 수치로 정리되어 있지 않은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개발자는 그 말을 해석해 여러 시제품을 만들어야 합니다. 맛을 수정하고 보고하면 또 다른 의견이 나옵니다. 짜다고 해서 간을 줄였더니 이번에는 심심하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고, 재료를 고급스럽게 구성했더니 원가가 높다는 이야기를 들을 수도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도 시간은 계속 흐릅니다.
“오늘 안에 끝내주세요.”
이 말은 메뉴개발자에게 단순한 일정 안내가 아닐 때가 있습니다.
아직 테스트해야 할 조합이 남아 있는데 몸은 이미 음식을 받아들이기 힘든 상태이고, 맛을 판단하는 집중력도 떨어진 상황에서 결과를 요구받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일을 하기 싫어서 멈추는 것이 아닙니다. 더 정확하게 만들기 위해 멈춰야 하는 순간이 있는 것입니다.
야근을 해도 먹을 수 있는 양은 늘어나지 않습니다
다른 업무처럼 야근을 하면 조리 횟수 자체는 늘릴 수 있습니다.
재료를 준비하고 소스를 만들고 기록을 정리하는 일도 더 할 수 있습니다. 원가표를 수정하거나 레시피 문서를 작성하는 업무라면 늦게까지 진행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시식에는 물리적인 한계가 있습니다.
배가 부른데도 억지로 계속 먹으면 속이 불편해지고, 음식 자체가 싫어질 때도 있습니다. 개발 중인 메뉴를 객관적으로 봐야 하는데 “이제 그만 먹고 싶다”는 감정이 먼저 생기면 올바른 판단을 하기 어렵습니다.
입의 피로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매운맛, 짠맛, 단맛, 기름진 맛을 계속 접하면 미세한 차이를 구분하는 능력이 떨어집니다. 그 상태에서 나온 판단은 다음 날 공복 상태에서 확인했을 때 전혀 다르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결국 야근으로 테스트를 강행했다가 다음 날 처음부터 다시 수정하는 상황도 생깁니다.
시간을 더 썼는데 결과는 오히려 늦어지는 셈입니다.
그래서 메뉴개발은 무조건 오래 일하는 것보다 맛을 정확히 볼 수 있는 시간에 집중해서 테스트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고 메뉴개발팀에 야근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물론 메뉴개발팀도 야근할 일이 많습니다.
시제품 촬영 준비, 레시피 정리, 식재료 발주, 원가 계산, 메뉴판 검토, 매장 교육자료 제작처럼 시식 외에도 해야 할 업무가 많기 때문입니다.
출시 일정이 임박했거나 갑작스럽게 수정 요청이 들어오면 늦게까지 일해야 하는 날도 있습니다. 매장 오픈을 앞두고 있다면 현장 테스트와 직원 교육 때문에 일정이 길어질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메뉴개발팀은 야근 안 해도 됩니다”라는 말은 메뉴개발자가 편하게 일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오히려 야근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업무의 특성을 이해해 달라는 말에 가깝습니다.
메뉴개발자의 집중력과 미각이 유지될 수 있도록 테스트 일정을 나누고, 중간에 충분히 쉬며, 여러 사람이 함께 평가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필요합니다.
메뉴개발은 시간이 아니라 상태가 중요한 일입니다
좋은 메뉴를 만들려면 충분한 테스트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단순히 근무 시간을 길게 늘린다고 좋은 결과가 나오는 것은 아닙니다.
배가 너무 부르지 않은 상태, 이전 음식의 맛이 입안에 남지 않은 상태, 집중력이 유지되는 상태에서 테스트해야 더 정확한 판단을 내릴 수 있습니다.
가능하다면 중요한 테스트는 오전이나 식사 전에 진행하는 것이 좋습니다. 한 번에 너무 많은 메뉴를 평가하기보다 메뉴 수를 나누고, 각 시제품의 차이를 기록하면서 비교하는 방식이 효율적입니다.
개발자 한 사람의 입맛에만 의존하지 않고 여러 사람의 평가를 함께 받는 것도 도움이 됩니다. 개발자는 반복 시식으로 감각이 피로해질 수 있지만 처음 먹어보는 사람은 다른 관점에서 문제를 발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윗사람이 원하는 방향을 가능한 한 구체적으로 전달해야 합니다.
“맛있게 만들어 달라”는 말보다 목표 고객, 판매 가격, 원하는 맛의 강도, 기준이 되는 기존 메뉴를 함께 제시하는 것이 개발 시간을 줄이는 데 훨씬 효과적입니다.
마무리
메뉴개발팀은 야근 안 해도 됩니다.
정확히 말하면, 야근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하려 해서는 안 됩니다.
메뉴개발에는 사람이 직접 맛을 보고 판단해야 하는 과정이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이 먹을 수 있는 양과 맛을 구분할 수 있는 집중력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습니다.
저 역시 개발 일정이 촉박할 때 “왜 오늘 안에 완성하지 못하느냐”는 압박을 받으며 스트레스를 느낀 적이 많았습니다. 열심히 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더 먹을 수 없었고, 더 맛본다고 정확한 결과가 나오지 않는 상황이었습니다.
좋은 메뉴는 긴 야근 끝에 갑자기 완성되는 것이 아닙니다.
적절한 공복 상태에서 정확하게 맛을 보고, 수정한 내용을 기록하고, 다음 테스트에서 다시 확인하는 과정을 반복하며 완성됩니다.
메뉴개발자에게 필요한 것은 무조건 늦게까지 남아 있는 시간이 아니라, 제대로 맛을 판단할 수 있는 환경과 현실적인 일정입니다.
그 사실을 이해하는 회사라면 불필요한 야근을 줄이면서도 더 좋은 메뉴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